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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수능 전날이고 낮시간부터 비가 추적추적 오기 시작했다. 가을비는 겨울을 재촉한다. 

     

   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타는 일은 여전히 고역이어서 요새 출근길은 거의 따릉이와 함께였다. 어차피 더 추워지면 자전거 근처엔 얼씬도 못할테니 많이 타두어야지 하는 생각이었다. 그리고 어제는 두번째로 크게 넘어진 날이었다. 첫번째 넘어졌을 땐 여름이어서 아스팔트에 그대로 닿았던 오른쪽 종아리가 넓은 면적으로 쓸렸다. 아직 벌건 자국이 고대로 남아 있는데 또 같은 방식과 같은 방향으로 넘어졌다. 턱을 넘을 땐 조심해야 한다. 그걸 넘지 못해서 자꾸 바퀴가 턱에 걸려 고꾸라진다. 어제는 속도도 꽤 내고 있어서 더 세게 넘어졌다. 다행스럽게도 옷이 두껍고 장갑도 껴서 살에 생채기는 적게 났지만 머리가 바닥에 부딪쳤다. 이마에 혹이 났고 쓸린 상처가 또 크게 생겼다. 땅에 머리를 받을 때 심지어 튕겨 올라가는 것 까지 느껴져서 좀 무서웠다. 튕겨 올라갈 때 접혔던 왼쪽 목덜미가 사선으로 당겨지질 않는다. 근육들이 잔뜩 놀란게 분명하다. 평소같았으면 빨리 털고 일어나서 그 자리를 떴을 텐데 어제는 머리가 울려서 도무지 바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. 근처에 있던 할머니들이 놀라서 달려와 걱정해주셨다. 그때 할머니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다 기억이 나는데, 정작 나는 그때 말이 잘 안나와서 머리를 감싸쥐고 주저앉아있는 게 할 수있는 전부였다.

     

    분명히 근처였지만 손이 닿지 않는 정도의 거리에 튕겨나간 에어팟이 굴러다녔는데, 그 근처에 있던 할머니한테 '저기, 저거, 밟, 아니요, 그거,' 따위의 의사전달 안되는 단어를 나열하다가 할머니가 거의 밟을뻔 하던 시점에 겨우 구해낼 수 있었다. 사고도 안되고 말도 안나오던 시점에 제일 먼저 걱정되는 게 내 몸뚱이가 아니라 저 하찮고 비싼 콩나물대가리라니 난 정말 자본주의의 맹아, 잘 교육된 물신숭배자 뭐 이런 게 돼버렸구나, 싶어서 웃겼다.

     

    이러저러한 시련은 있었지만 어쨌든 일터에 잘 도착해서 갈비찜도 얻어먹고, 카페 가서 커피도 마시고, 케익도 잔뜩 퍼먹은 꽤 먹을 복 넘쳤던 하루였다. 두통이 계속 있었다. 자기 전에 엄마 아들한테 나 자다가 죽는 거 아니냐고 잔뜩 호들갑을 떨었는데 오른쪽 어깨랑 왼쪽 목이 잘 안움직이는 것만 빼면 꽤나 멀쩡하게 일어나서 좀 머쓱해졌다. 아주 심하게 담이 온 것 같다. 어쨌든 고통스러웠으므로 오늘 아침엔 운동하는 것 대신에 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. 근육통이 빨리 풀리는 댓가로 8000원을 지불했다. 따릉이로 아낀 지하철비가 결국엔 이렇게 나가는 것 같았다. 조금 슬펐다.

     

    이곳으로의 출근도 마지막이다. 나는 오늘 퇴사한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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